[풍경]올리브 농장을 지나가네풀 한포기 허락하지 않은 마른 바람초병처럼 엎드려 대지의 혈관을 누르고 있다아주 천천히 분말로 날리는 안개 속올리브 초록의 잎은 낮은 모호스 부호로 떨고 있다.빈 농가의 차디찬 벽돌 사이로 흘러 나오는 아이들 웃음같은 하몬이 익어가고,올리브 나무는 풋사과 열매처럼 보였다.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한 과녁처럼대지를 포복하는 바람소리는 총알처럼 날아가고 있다. 마른 빵 한조각 구워낸 화덕의 열기농부의 기도가 되었는지 샘물이 되었는지마른 빵을 찍어 먹는 기름은 온유하지만겨울 저 들녁은 안개와 바람이 전투를 치루는
프리즈 내한공연이 곧 시작된다.한국의 미술시장이 골드바 같다고 한다. 작년 문전성시를 이룬 축제이며, 한국인 내면에 자리 잡은 사재기 충동을 격발했다.주식이나 부동산보다 안전한 예금이기에 묻지마 구매 사냥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상속을 위한 호재이다.모든 언론이 한국 미술시장의 잠재성이 깨어났다고 호들갑 했다. 예상치 못했던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이 된 듯 모두 놀라워했다. 화산 폭발하듯 미술시장이 터졌다. 누군가 카지노 블랙잭이 불꽃놀이처럼 터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국내 작가들 분위기는 더 추락했다.올해는 작년 기대 못지않게 함께한
[노을]봄 꽃이 핀 나무마다오래 머물지 못한다툭! 툭!심술 궂은 꽃샘 추위나무를 걷어 찬다힐끗 나와 눈이 마주친다나를 걷어 차면나에게도 빠져 나갈꽃 잎이 있을까가늘고 엷게 핀봄 꽃처럼 날아가지 못해도꼭꼭 숨겨온 것들 없으랴바위도 꽃 잎처럼날아가고 싶은가냘픈 마음 숨길뿐봄에 피지 못해도울컥 하는 마음왜 없겠는가
[타이어]거리에 버려 두지 않았을게다굴러가지 않더라도 일하고 있다.몸을 굴리는 직업이라뙤약볕에 앉아 있는 것도 익숙치 않다.나도 누군가의 벗겨지지 않은신발로 살았다.뒷 굽이 닳은 중년의 구두 같이몸의 중심이 바깥으로 쏠려아찔하게 걷는 것이 불안했다.얼만큼 걸었는지 묻지 마라.삶을 수명으로 평가하는 추측도 말고,무거운 짐 지고 사막을 걷듯좀 더 걸을 수 있지만낙타처럼 느리게 걷는 것이 위험했다.속도를 올릴 수 록 몸이 닳아지고 피부들이 떨어져 나간다.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았다삶이 니네와 같다포장된 도로만 달릴 수 없잖는가바닷
[그림일기 .청산] 글 . 금보성 1985년 나에겐 크고 푸른 산이 있습니다. 부동산 가치로 판단할 순 없지만 산 이름을 청산이라 부릅니다. 산이 있다고 늘 올라가지 않습니다. 내일은 바빠도 청산에 올라 호흡을 다스리고자 합니다. 청산이 멀리 있지 않아 등산복 차림에 동호인들과 관광버스로 떠나는 국립공원 같은 곳은 아니지만 늘 경건한 자세로 준비를 합니다. 청산의 입구에서 중앙의 계곡까진 빠른 걸음으로 서너 시간 족히 걸립니다. 한 여름에도 함부로 발을 담그지 못할 정도로 차가운 계곡에서 쉬시는 분들이 종종 있지만 청산을 보려면 좀
아내詩 금보성 내가 조금 착해졌다.설 명절도 서울에 붙잡혀 고향도 못 갔다.아랑곳하지 않고 아내가 저녁 즈음 돌연 별 보고 싶다고 하는데 그러자고 했다장롱 속 전지훈련 때나 입던 롱 패딩 꺼내면서눈이 녹지 않은 옥상 올라가나 싶었다.산동네 살면서 별이 뜨는 줄조차 몰랐다.차 열쇠도 챙기지 않고 나서기에 봄부터 걷던동네 둘레길 한 바퀴 걷나 싶었다.어디 가는지 굳이 묻지 않고 따라 나서는데일찍 들어 갈거 마냥 보일러 끄지 말란다.영하 17도의 봉인된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유독 추위에 약한 아내는 더 참을성 없어몇 발자국 걷다 분명 포기
풀잎 시인 김정옥(1980- ) 1 구불구불작은 길로 들어가시오랫동안 쉬고 싶었어요아무도 못보게 누워 있으려 했어요그런데 그만 들켜버렸어요숨소리가 너무 커서 밖으로 나와야만 했어요밖으로 나와서 다시 작은 길을 빙글빙글 돌다의자에 앉아있다 들어 가려는데그좁은 길이 무너지고 있었어요튼튼한줄 알았는데 물에 천천히 잠겨지고발이 빠지려고 했어요발에 진흙이 묻고 얼굴엔 상처가 나는데나는 더 들어가고 싶어요나와서 깨끗한 곳으로 가면 되는데어둡고 좁은 길로 자꾸만 몸이 움직이네요그곳엔 나만볼 수 있는 달콤한 열매가 있거든요색도 참 예뻐서 두고 나
운전을 안하기에 대중교통 이용한다.KTX나 버스로 지방 내려가는 동안 줄곧 잠을 잔다. 익숙치 않은 지역으로 내려 갈땐 잠이 오지 않는다.창가에 달라붙어 떨어질줄 모르고 핸드폰 카메라 샤터 누른다.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들이 신간서적 마냥 신기하게 저장된다.비슷비슷한 풍경들과 익숙한 마을의 배치도와 지붕의 색. 간혹 한 두어집 한옥도 있다. 새벽마다 읽는 주간신문은 활자보다 활자 사이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는 인쇄 잉크 내음이 더 좋다.리쿠르트 잡지사의 월말 원고마감과 편집 그리고 인쇄되어 나올때까지 수습기자 마냥 날샘하다 의자에 기대
아내의 두통 _인수봉 29 우이동 골짜기보다 오래된 아내의 두통은 8월 소낙비 속에 핀 백일홍보다 붉다. 아니, 골짜기를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먹고 달려가 쓰러지는 숲보다 푸르다. 오, 어디를 보나 온통 하얗게 빛나는 숲. 그리고 파란 나뭇잎들이 물결치는 골짜기! 아내의 머릿속엔, 숲속의 옹달샘과 다람쥐와 딱따구리와 구름과 바람과 소낙비와 안개와 소나무와 번개와 천둥과 졸졸거리며 흘러가는 작은 시내와 철없는 내가 살아 있다. 아내가 백일홍보다 붉은 알약을 먹는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박준석의 그림을 보고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박준석의 그림을 보면 추상과 구상 사이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구체성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듣고 하는 모든 사물의 세계는 우리의 구체적 감각을 통해 우리에게 지각된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이 구체성의 세계를 재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무리 정밀한 사진이나 극사실화라고 하더라도 사물의 풍부한 구체성을 다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요즘 신기술을 통해 구현하는 4D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냄새까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