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연구소‘길’ 기호철 소장, 1921년 청도군(淸道郡) 신안(新安)에서 발간한 세 번째 간행본 목판으로 확인

추강집 목판을 조사하는 남지은 연구원
추강집 목판을 조사하는 남지은 연구원

재미 동포가 소장품 조사 의뢰하면서 밝혀져

조선 단종의 생육신인 추강 남효온의 시문집 중에 일부

1은 영천 군수로 부임하는 윤종(胤宗) 전별시 등 수록, 7은 강응정,안응세 등 인물편 등 수록

국회등록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이사장 이상근)은 미국에 있는 목판 2점을 조사한 결과 조선시대 단종의 생육신 중에 한 분인 남효온(1454~1492)추강집(秋江集)목판으로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목판 2점은 재미동포의 소장품으로 문화유산회복재단에 조사를 의뢰하였고, 문화유산연구소 기호철 소장의 조사로 1921년 제작한 3번째 책을 인쇄하기 위해 제작한 목판임을 확인하였다.

추강집(秋江集)1511년에 편찬하여 필사본으로 만들어진 이후 외증손 유홍에 의해 1577년에 초간본이 간행되었고, 유홍의 증손자 유방이 금구 현령으로 있을 때 이를 중간(重刊)하였고, 1921년 후손 남상규가 청도군 신안에서 문집을 삼간(三刊)하였다. 이번 재미동포 소장 목판은 권1, 29면과 30면이 앞뒤로 새겨진 것 1매와 권7, 32면과 33면이 새겨진 것 1매로 이를 각 판본과 비교하면 1921년 삼간본의 목판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추강집 목판
추강집 목판

 

선생은 1478(성종 9)25세에 임금에게 장문의 상소를 올렸는데 그중에는 문종의 비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소릉(昭陵)을 복위하자는 주장이 있어, 계유정란을 통해 임금이 된 세조와 그로 인해 배출된 공신의 명분을 직접 부정하였다. 이 일로 벼슬을 버리고 김시습 등과 함께 교류하였고, 육신전(六臣傳)을 통해 박팽년(朴彭年) · 성삼문(成三問) · 이개(李塏) · 하위지(河緯地) · 유성원(柳誠源) · 유응부(兪應孚)을 충절의 상징으로 높게 평가하였다. 목숨을 잃은 사육신과 달리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김시습(金時習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조려(趙旅성담수(成聘壽(南孝溫)을 생육신이라 하였다.

조사에 참여한 남지은연구원은 재외 동포들의 고국 사랑은 외국에서 유랑하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만날 때 각별해지고, 소중히 간직하여 언제가는 고국으로 돌려보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같은 마음이라면서 이번에 만난 동포분도 오랜세월 간직한 유산이 남효온 선생의 목판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어 너무 기쁘다고 소개하였다.

문화유산회복재단은 미국에 있는 문화유산 조사와 연구가 끝나면 현지에서 전시회를 열어 가치를 확산하고 소장품의 공개를 촉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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